불교적 관점에서 '없음', 즉 '공(空)은 무한한 가능성의 의미이다. 생각이든 말이든, 우주든 뭐든 이 무한한 가능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 하나의 사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무한한 원인과 조건들의 결과라는 의미다.
그런 원인이나 조건들 중에서 하나라도 바뀌거나 제거되면 다른 현상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경험이란 단 하나의 결과로 이끌어가는 유일하고 연속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건과 발생의 확률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조건에 좌우되는 것들은 모두 공, 즉 텅 비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앉아 글을 쓰는 의자의 다리 4개가 다 튼튼한 것과 2개는 튼튼하고 2개는 금이 간 의자라면 겉으로는 모두 의자이지만 기능적으로는 동일하지 않다.
이처럼 기본적인 조건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의자에 앉은 나의 경험 또한 틀림없이 다르기 마련이다. 각 조건들이 서로 합해져서 일어나는 어떤 결과를 연기 혹은 상화의존이라고 한다. 연기적 원리가 우리 삶의 주위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봄에 뿌리는 씨앗이 그 속에 있는 성장이라는 가능성을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흙 속에 심어야 하고, 물을 주어야 하고, 적당한 양의 햇빛을 쪼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알맞은 조건 아래서도 무엇이 자라는가는 씨앗의 종류에 달려 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자라지는 않고, 단감의 씨에서 갑자기 사과 열매를 맺는 나무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씨앗 하나에도 이렇게 상호의존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내가 하는 선택들은 상대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들은 원인과 조건들이 되어 상대적인 실체의 영역 안에서 필연적인 결과를 창조하게 된다. 상대적인 선택은 강물에 던진 돌맹이와 같다. 돌맹이가 떨어진 곳에서 동심원의 물결이 퍼져나간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방법이 없다. 물론 조준을 정말 잘못해서 돌이 강물이 아니라 강물 위를 지나고 있는 보트 위로 떨어졌다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단순히 물이 부족해도 피로나 두통,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나라는 근본 존재의 절대적 실체를 변화시키지 않고도 수많은 것들이 상대적 경험의 본질을 결정지을 수 있다. 내가 딸기를 보고 있다면 딸기의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그것의 상대적인 모습, 즉 나의 뇌속에서 형성되는 심리적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삶에서 경험하는 생각과 느낌과 감각 등 그 어떤 것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의 지각 작용은 대상이 가진 진정한 본질에 단지 거칠게만 접근할 뿐이다. 실제 세상과 마음 속의 세상이 합쳐져 하나의 세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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