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는 세포로 구성되고, 세포의 핵 안에서 이루어지는 핵산들이 서로의 짝을 알아보고 결합하여 세포마다 고유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그것들로 신체의 조직과 기관들이 만들어진다. 생명체의 신체는 모두 이렇게 분자적인 인식의 작용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다.
"오직 식이 있을 뿐이며,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식에 따라 우리가 대면한 대상이 달라짐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인식하는 능력이나 인식작용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포착된다는 말은 대개 인식에서 주관의 작용이 결정적임을 의미한다.
유전자 이하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자적 식의 작용을 안다면, 식의 작용은 단지 우리가 마주한 대상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것에 머물지 않음에 생각이 미칠 수 있다. 분자적 식의 작용은 나라는 생명체의 신체를 만들어낸다.
분자 수준에서의 식의 작용이 신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활동하는지를 결정한다. 생명체라는 존재방식은 물론 그 존재 자체가 유전자나 그 이하 수준에서 진행되는 식의 작용의 산물인 것이다. 식의 작용이 단순히 인식론의 영역뿐 아니라 존재론의 영역에도 속한다.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이유나 존재양상을 다루는 미시적 식의 작용은 생명체의 존재를 특정한 양상으로 구성하고, 그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일차적인 성분인 것이다. 분자적 식의 개념을 통해 미시적 식의 존재론에 도달하게 된다.
식의 집적이 신체를 만들어내는 것과 반대되는 방향의 과정 또한 이런 식의 존재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생명체의 현행적인 활동이 미시적 식의 형태로 저장되고 집적되는 과정이 그렇다. 진화라는 생명의 장기 지속적 과정이 이와 연관되어 있다.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빛과 기온의 변화, 물과 공기의 유무나 상태 등에 대해 '알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모든 동식물이나 미생물조차 다르지 않다. 살려는 의지가 있다면 환경과 인근에 있는 것에 대해 알고 판단하는 식의 작용이 일어난다.
그 결과 얻은 식이 기억되고 저장되며, 유전자는 그런 작용의 결과 가운데 최소치가 저장되고 기록된 것이다. 환경에 적응한 결과가 직접 유전자를 바꾸거나, 거기에 기록되지 않는다. 적응한 것들이 살아남아 번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죽고 도태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가 보존되는 방식으로 '저장'되고 집적되는 것이 불교적 개념으로 '행(行)'이라 명명되는 생명체의 의지 내지는 성향이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활동이나 작용을 만들어내고, 그런 행이 만들어낸 다양한 식이 유전자 정보의 형태로 저장되고 집적되는 것이다.
십이연기 중 하나인 "행을 조건으로 하여 식이 존재하게 된다"는 명제는 무지로 인한 인간의 충동이 분별을 만들어 내는 과정뿐만 아니라 조금더 근본적인 생물학적 과정 일반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유전자가 아미노산을 모아 단백질을 만들고 세포와 신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상을 알아보는 식의 작용이지만, 이것은 유전자라는 종자에 집적된 식이 생명체의 신체로 현행화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유전작 형태로 집적된 잠재성이 발생적 조건에 따라 형행화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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