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느리게 걷거나 달리면 숨어있는 주변 공간과 시간을 새롭게 음미할 수 있다
나는 이리저리 걷거나 달리기를 좋아한다. 특별히 한 지역이나 장소를 정해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약속 장소를 가거나 출퇴근을 차나 자전거 등 탈 것들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두 발로 다닌다는 의미다.
도시나 시골 등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의 삶과 풍경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경험하고 이해하기 좋은 방법은 땅바닥에 발을 딛고 걷거나 달리며 공기를 마시고 날씨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저 걸으면 된다. 속도와는 상관이 없다. 요즘 고속도로 변에서 자주 보는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는 광고가 아니라도 천천히 이동할수록 모든 것이 더 자세히 잘 보여 도시와 친해지는 가장 감각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걷고 보고 사진 찍으며 전쟁 치르듯 해내는 도시 답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답사 여행은 자신의 힘에 부치기 쉬워 우선 즐겁지 않고, 자칫 지겹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거나 달리기도 좋다. 개성 없는 꽉 짜여 성냥갑 모양으로 쌓아올려진 신도시의 무표정한 풍경이지만 변함없이 공기는 투명하고 빛은 예리하다. 복잡하게 뒤엉킨 습한 생각들을 바람에 날리다 보면 발과 땅이 대화하며, 나 자신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다.
세상 풍경과 볼 때마다 반가운 이웃처럼 편하게 마주하며, 풍경을 만나는 주도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이 없는 나에게 돌아온 듯 느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동이나 답사처럼 특별한 의도 없이 그냥 느릿느릿 걷다 어슬렁거리며 시간에 속박된 신체가 해방된다.
걷기가 내 일상으로 성큼 들어오면 섬세한 풍경을 누리는 것은 덤일 뿐이며, 경쾌한 산책이고, 즐거운 철학이며, 멀고 긴 여행이기도 하고, 그냥 거리로 뛰쳐나온 전위적 발걸음이 되기도 하는 즐거운 삶의 길이 되기도 한다.
일단 나의 걷기나 달리기는 애를 쓰고 따라가야 할 줄거리가 없다. 춘하추동의 계절이나 더위와 추위, 눈이나 비, 그리고 주위의 시선에 상관이 없어지며, 그냥 한 걸음 두 걸음 떼며 나아가는 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차를 타면 매번 같을 길을 가야 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걷기나 달리기는 항상 다른 길과 골목으로 가는 소박한 즐거움도 있으며, 목적 없이 걸으며 느끼는 계절과 날씨의 아름다움은 일상의 또 다른 행복을 경험하게 한다.
걸으면 더 느리게 가면서 시간을 마음껏 탕진하고 싶어지지만, 달리면 1초라도 더 빨리 가고 싶어지면서 재미와 기쁨을 갉아 먹는 것이 마음이다. 가야 할 곳이 있을 때 두 발로 가게 되면, 바쁜 현대의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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