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나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산 등 길 위로 나선다는 것은 평소의 모든 활동과 일상적인 임무, 체면상 필요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는 일 따위는 물론, 하던 일마저 손에서 놓아버리고, 익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일이다.
그리고 함께 가는 사람들 외에는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입장이 된 한가로운 상태를 즐기기도 한다. 주저해왔던 일을 결행하기 위해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길건 짧건 어느 한동안에 있어서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처음 내딛는 발걸음에는 꿈의 가벼움이 담겨 있다. 내 욕망이 뻗어간 선을 따라 무작정 가보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온갖 영상들이 가득하고 어느 것에나 응할 용의를 갖추었으나 정작 조금 뒤 찾아올 피로를 아직은 알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상상의 현실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대회 출발 전날 밤의 어지러운 꿈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그러므로 얼른 깨어나 길 위에 서야 한다. 하지만 막상 떠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길 떠난 처음 얼마 동안의 열광은 머지않아 보다 적절한 균형상태로 회복되고, 줄 풀린 강아지처럼 한껏 자유로움으로 부풀어 올랐던 자유의 기분도 역시 끝이 난다. 얼마 동안은 규칙적인 발걸음을 계속 옮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달려간다는 것은 집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어떤 거처를 향유하는 것과 반대다. 우연히 내딛는 걸음이 나 자신을 행인으로, 길 저 너머의 나그네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나를 걷잡을 수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으로 변모시킨다.
세상은 내가 저녁마다 잠자는 한 지점이다. 여기 혹은 저기 존재한다는 것은 실처럼 뻗어간 길, 높고 낮은 장단으로 변화하는 곡선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사실 걷거나 달리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 거처를 정하는 행동이다.
시간이 지나 멈추는 발걸음, 잠깐의 휴식, 그리고 간식은 항상 새롭게 달라지는 위치에 따라 체험적 시간 속 체험으로 남겨진다. 시간은 오로지 내 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달리는 사람은 시간 부자다.
수많은 여러 가지 다른 수단을 다 버리고 바로 이런 이동 수단을 택함으로써 달력의 시간과 맛서서 나 자신의 양보할 수 없는 권능을, 사회적 리듬에 맞서서 나 자신의 독립성을 앞세운다. 길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달콤한 낮잠을 즐긴다.
또는 마음을 흔들어놓는 어떤 풍경을 감상하거나 운 좋게 목격하게 된 어떤 곳의 흥겨운 축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나의 신체적 척도에 비추어볼 때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땅 조각이 얼마나 큰 지도 깨닫게 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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