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은 단순히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시간도 동원되는 이중 구조의 입체적 행위이다. 여기서의 시간은 하루 해야 할 일들과 습관들로 특징지어지는 일상의 시간이 아니라 기지개를 켜고 빈둥거리면서 시간표에만 얽매이지 않는 시간이다.
내면의 시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어린 시절 혹은 자기 반성에 걸맞는 삶의 순간으로 돌아가기, 길을 따라가면서 지나온 삶의 모습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회상의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행복감을 자아내며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에 즉흥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나 자신이 내 시간의 유일한 주인이다. 기분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걸음을 멈추어 자세한 풍경이나 샘물을 관찰하기도 하고, 호수나 강가의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가 보거나, 풀밭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일렬로 행군하는 개미떼를 보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가며 보았던 나무에 호기심이 일어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길을 되돌아가기도 한다. 잠시 발길을 멈추어 덤불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풀숲 속으로 날렵하게 사라지는 들고양이를 보기 위해 발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시간을 초월하거나 혹은 느낄 시간 속으로 살그머니 빠져나가는 틈새인 여가활동은 어떤 모종의 성과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살아가는 나 자신의 능력에 맞춰 하는 노력이다. 해야 할 일과 시간에 따라가면서 나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혼자 결정한다.
의자 그늘에 앉아 쉬거나 공동체 구성원들과 농담을 나눈다고 해도 거슬릴 일 따위는 전혀 없다. 일살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볍게 천천히 여유를 가진다는 사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아무리 빠른 사람도 자신의 그림자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오로지 내 것이라는 차분한 확신이 중요하다. 삶은 편안함, 수익성, 효율성이라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피할 뿐만 아니라 하등의 관계도 없다. 더는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고 천천히 여유를 갖는다. 편안함과 수익성에 대한 광기는 그에 대한 반발로 진행을 늦추고 즐거움을 깍아내리려 한다.
하루의 일상은 시간을 충분히 차지하되 느리게 차지하는 일이다. 일상은 삶의 의욕을 꺽는 현대의 그 절대적인 필요성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발길 닿는 대로 여유를 가지고 한가롭게 거니는 소확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느린 삶은 시간의 유예요, 전진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런 느린 삶은 주변 환경 속에 뛰어드는 일이기도 해서 일상적 상황의 특징들에 감각을 맞추어 금세 제 것으로 삼을 방법을 알려준다.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데도 조금도 외롭지 않으며 나의 내면에 틀어박힌다.
시간은 신체척 척도로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느린 삶은 모든 일상을 기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여명, 석양, 어둠, 땅, 돌, 언덕, 산, 물, 비, 바람 등 삶은 우리를 앞지르고, 감탄해 하거나 걱정하게 하는 세상에 잠긴 우리의 본질적 인간성을 상기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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