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태어나 걷는 것이 세상과 맺는 인간관계의 모태와 같은 것이다. 이 근본적이고 끝이 없으며 단순한 경험을 어떤 사람들은 인적 없는 들이나 산, 바다나 강가를 걷거나 달리면서 끊임없이 답습한다.
단단하게 굳은 땅이 끝나면 또 다른 세상의 언저리에 닿게 되고, 흔적도 없이 물만 있는 모래사장도 있으며, 집도 식물도 도시도 도로도 없는 자연의 땅에서, 또는 인공의 도시에서 걷고 또 걷는다. 오르막을 올랐다가 내리막을 내려가기도 한다.
세상은 결코 평탄하지 않고 언제나 기복 많은 길과 전망과 관점의 변화를 가르쳐주고, 내가 밟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들 접촉하게 해준다. 우리 인간의 외부, 참으로 가깝고도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존재의 신비와 마주하게 한다.
바위나 물, 수평 또는 수직의,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의 존재가 그저 자신이 영원히 알지 못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일상의 달리기나 걷는 중에 주어진다. 나의 몸과 세계의 직접적인 관계, 그 자연적인 관계가 느껴진다.
내 몸은 혼자 존재 그 자체로 나아간다. 버팀대 없이, 기계 없이 , 엔진도 없이 취약하지만 끈질기게, 작고 느리며 하찮기도 하고, 언뜻 보면 무력하고 허약하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반복되고, 이어지며, 쌓여간다.
사회 속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삶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혼자서, 오직 나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의 한 조각을 지나고 또 지나고 있다. 나는 삶을 통해 내 삶의 취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알아본다.
그리고 그 둘이 다름이 아니라 같으며, 왜소함이 아니라 당당함을 깨닫는다. 달리기의 큰 겸손함이 곧 큰 자부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단번이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느낌인 느림 역시 생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명상적인 달리기는 빠르게 달려 나아가고, 한 두 걸음에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달리지만 누구나 그리 하듯이 한 걸음, 한 걸음을 결코 빠른 리듬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먼 곳에서도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달릴 때 나는 편하지 않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힘에 실려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이나 차량들이 내게는 언제나 나와 다른 종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기도 한다.
천천히 느리다고 해서 내가 많이, 오래, 자주 달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빠른 사람들의 눈에는 펭귄이나 달팽이 같은 나의 느림을 지구력이 보상해주고 있다. 내 삶에 속도가 끼어들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나 걷기는 무엇보다 겸허한 인내심과 몸의 끈기, 땅에 뿌리를 내린 몸의 승리다. 끈질김은 번개처럼 스치는 것을 이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습관들을 갈고닦아 왔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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