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나 달리기는 지팡이나 모터는 없지만 홀로, 취약하면서도 끈질기게 앞으로 나아간다. 걸음은 작고 느리며 하찮아 보여도, 또 얼핏 보기에 무력하고 허약해 보이지만, 계속 반복되고 이어지며, 축적되면서 저 멀리 지평선을 조금씩 내 앞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혼자서, 오직 나의 힘만으로 세상의 한 조각을 지나가면서 나는 그 취약하면서도 강인함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 둘의 조합이 당당함을 깨닫기도 한다. 걷기나 달리기의 그런 겸손함이 곧 나의 큰 자부심의 원천임을 깨닫는다.
느림 그 자체가 생각을 동반하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은 빠른 리듬이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편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힘에 실려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내가 아닌 듯하다.
느리지만, 많이, 오래, 자주 걷거나 달릴 수 있으며, 그 느림은 달팽이처럼 나의 지구력이 보상해 준다. 일상의 삶에서는 별로 속도가 끼어들 일이 없다. 여유가 생기는 대로 조금씩 혹은 멀리까지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무엇보다 겸허한 인내심과 몸의 끈기, 지상에 뿌리내린 몸의 승리다. 끈질김은 언제나 번개처럼 짧은 순간 스쳐지나가는 것을 이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장하듯이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일상 속의 달리기는 어떤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생각과 걷기나 달리기, 말과 실천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밝히기 위해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서로 다른 범주에 따라 굴절되었지만, 동일한 내적 움직임이다.
뒤로 걷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앞으로 가는 것이 정상적이다. 장애물을 못 볼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게임을 제외하고는 뒤로 갈 경우라도 반드시 몸을 돌려세워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삶에는 내 앞이 있는 것만 존재한다.
목표지점, 다음 걸음, 다가올 시간은 물론 앞을 향한 이 움직임은 과거 원시인 조상들에서부터 이어져온 보편적인 원칙이다. 말이이나 문장이 다음 단어들을 향해 이어지는 것이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생각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우리 삶에는 그 어떤 것도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몸도 생각도 시간도 말도 항상 과거가 따라오며 그것들을 감싸 안는다. 과거는 그것들에 스며들고 물을 대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빨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망각의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걷거나 달리다 보면 옛 것이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대에 뒤처진 낡은 것이 아니라 근원적이고 모태적이며 시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함없이 모든 것이 원천, 즉 인연을 품고, 그것에서 새로움이 발생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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