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가면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이 스스로에게 투영되도록 허용하고 자신을 열고 가만히 앉아 있듯이,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열린 가슴에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투영하고 있다. 슬프든, 기쁘든, 즐겁든, 공포스럽든 가리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도 왕정시대든, 식민지 시대든, 전쟁시대든, 저항의 시대든, 평화의 시대든 상관 없이 시민들의 발걸음에 자신을 그대로 개방해두고 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간을 아낌 없이 환영하고 제공한다.
영화는 상영되는 시간 동안만 스크린에서 살아있다 사라지고, 아이들도 한참 자랄 때까지만 부모 아래서 서로 부대끼지만 성장하고 나서는 텅 빈 공간을 두고 떠나가고, 광화문 광장도 사람들이 모여들 때는 살아있는 공간이 되지만 떠나고 나면 죽은 공간이다.
영화의 스크린이나 가정의 부모, 광화문 광장도 가장 폭력적이거나 가장 강렬한 상황에서도 절대 다치거나 손상을 입거나 충격을 받지 않는다. 작은 손상이나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일시적일 뿐 곧바로 자신의 위치로 돌아와 없는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와 자식들과 사람들은 그냥 제 마음대로 왔다 가지만, 스크린과 부모와 광장은 그대로 남는다. 그것들은 언제나 깨끗하고 안전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놀라운 이야기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절대 스크린을 의식하지 못한다.
한참 자라는 동안 아이들도 절대로 부모의 자애와 관심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하고, 광장을 이용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도 광장의 공간의 포용력과 안전함을 의식하지 못하며 광장에서 전해지는 그 분위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활력과 이야기에 흠뻑 취해 있다가 위치가 달라지고, 장면이 바뀌면 모두의 시간도 앞으로도 가고 뒤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새로운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한 깨어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화관의 스크린이나 가정의 부모 마음 속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은 영화관의 스크린이나 가정의 부모나 광화문 광장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없으면 처음부터 우리 삶의 이야기는 만들어지지도 있을 수도 없다.
우리가 영화관을 나올 때 한참 동안 영화를 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스크린만 보고 있었듯이, 우리가 자랄 때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가정의 부모과의 관계에만 파묻혀 있었거나 광장의 열기 속에서만 갇혀 있었다.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고,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어떤 허상을 응시하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멋진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살아있는 스크린, 이것이 우리 인생의 역설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오월의 첫 날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