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밀, 칡소, 푸른콩장… 사라져가는 토종 식재료 살리자
한번 본 사람은 잊어도 한번 먹은 음식은 못 잊는다. - 이영자
< 이 글은 2019. 1.25. 조선일보에 게재된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의 글 입니다.>
우리 고유 식물종 가운데 '앉은뱅이 밀'이란 게 있다. 키가 50~60㎝로 작아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포기 번식이 왕성해 수확량이 많다. 그래서 미국 육종학자가 이 앉은뱅이 밀을 활용해 다수확 종자를 만들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반면 우리 토종 앉은뱅이 밀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84년 정부의 밀 수매 폐지로 재배 면적이 크게 줄어 경남 일부 지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우리 고유 소인 '칡소'도 멸종될 뻔했다. 칡덩굴을 감은 것 같은 무늬가 온몸에 새겨져 있다. 동요 '송아지'에 나오는 얼룩소이자 이중섭의 그림과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빼기 황소가 바로 칡소다. 육질도 연하고 지방이 적어 수라상에 올랐다. 우리 조상과 살아온 토종이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산간 오지에서만 발견될 정도였다.
앉은뱅이 밀과 칡소 모두 사라져가는 먹거리를 지키려는 슬로푸드 국제협회의 전 세계적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돼 있다. 선정 기준은 특정 지역의 환경·문화·경제·역사와 연결되어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되며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한다. 현재 총 89국의 음식 4988가지가 '맛의 방주'에 올라 있다. 최근 나물로 즐겨 먹고 약초로도 활용하는 울진의 '해방풍'이 한국의 '맛의 방주' 100호로 등재됐다. 우리나라는 2013년 제주 푸른콩장이 처음 등재된 이후 연산 오계(烏鷄), 장흥 돈차(전통 발효차), 태안 자염(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 순천 대갱이(갯벌에 사는 생선), 신안 바위옷(바위에 붙은 이끼), 홍성 팥장(팥으로 쑨 메주), 동아(길쭉한 베개처럼 생긴 박과 채소), 능금(재래종 사과), 노란찰(토종 옥수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모두가 우리 고유 식재료와 음식인데도 낯설다. 거의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앉은뱅이 밀은 등재 당시 90t이던 생산량이 수백t으로 늘었다. 글루텐이 적고 향이 좋아 수제비·칼국수·전에 좋고 누룩에도 사용된다. 제주에서만 나는 토종 푸른콩으로 만든 된장·간장인 푸른콩장은 서귀포에서 구전(口傳)되던 것을 '맛의 방주' 등재를 통해 살려냈다.
지역마다 지역 음식이 있다. 그 지역 산물에 그 지역 조리법이 더해져 사랑받아온 음식들이다. 하지만 산업화 등으로 많은 식재료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다양한 음식의 소멸로 이어진다. 반면 전에는 먹을 수 없거나 먹기 어렵던 수입 식재료와 그것으로 만든 가공 음식이 지천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인류는 지난 세기에 채소 생물종의 75%를 잃었고, 가축종 다양성은 33%나 줄었다. 그 결과 세계 식량의 95%가 30가지 미만의 작물로 공급되고, 인류 음식의 75%가 식량 작물 12종과 가축 5종으로 해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하고, 삼면이 바다에 접해 강인하고 우수한 토종이 많은데도 대부분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 현재 등재된 100품목도 소멸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소멸 위기에 놓인 숱한 토종과 지역 식재료 및 음식을 지키려면 '맛의 방주' 등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소비자의 관심과 동참이다. 소비자가 그 가치를 모르면 지켜낼 수 없다. 토종 식재료와 음식은 우리가 먹어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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