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외손자가 방학 후 개학을 해서 학교에서 2학기 회장단 선거에 나가 낙방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거나 해야 할 때는 언제나 그 일을 할 수 있는 뭔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어려운 것은 그래도 어려운 법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는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들이 가장 어려운 단계다. 집에서 하는 것과 다른 것이 너무 많고, 무슨 법칙을 따르듯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바꾸어야 할 때도 있다.
언뜻 보기에는 완전히 모순되고 자신이 익숙한 것들과 상응하지 않는 규칙과 훈련 앞에 서게 된다. 학교에서는 이제 갓 사회생활의 길에 접어든 아이들의 내적 갈등을 건강한 발전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내버려둔다.
하지만 이 단계를 극복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회적 규율에 따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경험들에 진정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고집, 즉 집착이다. 갈등과 싸움, 심지어 전쟁까지도 미연에 방지하고 평화를 이루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기 권리에 대한 주장과 거만함이다.
폭력과 불화와 전쟁의 악순환을 단칼에 끊어버리려면 불의로 인해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뎌내며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밭은 말, 입으로만 하는 말이 우리 의식의 전혀 다른 층을 뚫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누군가 이야기로 전해주거나 눈앞에서 소리내어 읽어주는 말은 눈으로 묵묵히 읽는 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가진다. 듣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서 배울 자세, 그 말을 선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마치 귀가 먹은 듯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활짝 여는 사람, 자기 안의 수신 장치를 켜고 안테나를 최대한 끌어올려 일상의 삶의 평범성을 훌쩍 뛰어 넘는 존재까지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들은 내용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흐지부지 흩어져버리지 않게 하려면 그렇게 여기 저기서 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심화화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분석과 비판보다는 아우르고 합치고 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자기 내면화 과정이 한 가족의 삶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삶을 조화롭게 해주는 기본 전제 조건이 된다. 생각과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면제될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복종이 사소함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유의 전제 조건일 때도 자주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