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변화, 그 어지러운 변화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 - 호찌민
< 이 글은 2019. 8.30. 아시아경제에 게재된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의 글 입니다.>
'악마가 되지 마라(Don't be evil)'. 지금의 구글을 만든 사시(社是)다. 구글은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악마의 제국으로 보았다. MS는 당시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IT시장을 지배하려 했고, 미국 법무부와는 반독점 제소와 관련한 진흙탕 싸움을 했다. 악마는 당연히 비틀거렸다. 모바일 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그래서 윈도우에 집착하느라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하는 죽은 회사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그런 MS가 돌아왔다. 최근에는 한 달 337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시가총액은 애플을 넘어 꿈의 1조달러를 달성했다. 세계 1위다. 완벽한 제국의 역습이다. 그 가운데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저(Azure)가 있고, 윈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 길을 개척한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라는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어지러운 변화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위해 MS 전체를 바꾼 것이다.
비행기, 즉 항공산업의 가장 큰 미래 경쟁자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자율주행차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업체는 비행기로 2시간 걸리는, 하지만 자동차로는 10시간 걸리는 두 지역 간 이동에 대한 운송 수단 선호 조사를 했다. 결과는 놀랍다. 2시간 정도의 비행거리에 공항을 오가는 시간, 지루한 검색과 소지품 검사 등에 시달리기보다는 차 안에서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산업에는 호재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 자동차산업은 자동차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제조업체에서 서서히 운송 수단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체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더 호화롭게 변하면 호텔과 관광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싼 돈 주고 호텔에 묵기보다는 잘 정비된 리무진 같은 차 안에서 즐기면서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한두 기업과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이 변화의 폭이 너무 크고, 이 변화로 영향을 받는 영역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기업과 산업의 사례를 들었지만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도다. 인도는 생체 정보까지 포함한 개인정보를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에 등록시키는 '아드하르'라는 생체 인식 디지털 ID 계획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등록자 수는 12억명을 넘어섰다. 신원 확인은 기본이고 이를 통해 금융, 헬스 케어, 유통, 심지어는 농업 분야의 혁신까지 기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코끼리가 움직이고 있다.
이 어지러운 변화의 핵심은 디지털 변혁이다. 개인, 기업, 사회, 국가가 디지털 기술을 기초로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다. 돌아온 악마인 MS는 클라우드 시스템 애저 운영 체제로 윈도우 대신 리눅스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때 MS를 악마라고 지칭하던 구글이 오히려 MS의 이런 융통성을 배우려 한다. 느리게 움직이던 코끼리는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어 빠르게 움직이는 디지털 코끼리로 변하고 있다. 모두 스스로를 바꾸려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앞으로 5년 혹은 7년 사이에 우리 미래의 삶과 경쟁력이 결정된다. 일본, 적폐 청산, 북한 핵, 한ㆍ미ㆍ일 동맹 등 숱한 과제가 있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기술 강국'이라는 목표에 '어떤 변화도 따라잡을 수 있는 디지털 강국'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가 더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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