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응징·용서가 한 묶음인 전략이 승리한다
내 주장을 관철하자면 상대 주장도 경청해야 한다. 그 안에서 제3의 길을 찾는 게 참된 지혜다. - 조용래
< 이 글은 2019. 8.16. 매일경제에 게재된 김인수 오피니언부장의 글 입니다.>
받은 대로 갚는다. 이른바 '팃포탯(Tit for Tat)'이라고 불리는 전략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상대의 배신에는 상응하는 응징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동네 호구가 된다.
일본이 우리에게 무역 보복을 가한 이상 맞서야 한다. 그냥 굴복할 경우 '한국은 호구'라는 인식을 줄 것이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간'을 보기 시작했다. 두 나라 전투기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침입했다. 우리가 상대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그냥 뒤로 물러선다면, 우리는 동북아의 호구가 된다. 우리를 배신한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보여야 한다. 국민들이 일본 제품 불매에 나선 것 자체는 옳은 전략이다.
팃포탯은 주변국들과 신뢰·협력 관계 구축에도 필요하다. 우리에게 팃포탯의 힘과 의지가 없다면 상대는 언젠가는 우리의 신뢰를 배신해 자신의 이익을 취할 것이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합리화할 것이다. 이를 막을 팃포탯이 있어야 배신을 안 당한다. 상대의 협력을 얻는다.
그러나 팃포탯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당사자들이 모두 상대가 먼저 배신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일본이 먼저 배신했다고 믿고, 일본은 한국이 먼저 배신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한일 갈등에는 이 같은 측면이 존재한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지급한 무상 3억달러, 저리 차관 2억달러에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포함돼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건 '약속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생각은 다르다. 과거사 문제로 무역 보복을 가한 것 자체가 국제무역질서를 해치는 배신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팃포탯이 계속된다면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관계에는 팃포탯 말고 다른 무언가가 함께 필요하다. 다행히 인간 두뇌에는 신뢰 구축을 위한 몇몇 장치가 내장돼 있다.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이 그중 하나다. 이는 상대가 나와 다른 관점·감정·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본(한국) 정부는 '만약 내가 한국(일본)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뢰를 위한 또 다른 장치는 상대의 고통과 감정을 느끼는 공감 능력이다. 아베 정부에 아쉬운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들은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의 고통에 둔감하다. 그 고통에 눈감을 수 없는 한국민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 역시 부족하다. 한국 정부 역시 가끔은 일본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이 부담한 5억달러는 당시 일본 외환보유액의 24%에 이르는 거액이라는 점, 식민 지배 자체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배상한 나라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일본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협상도, 설득도, 합의도 가능하다. 물론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고 공감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는 가해자인 일본이 더 크게 져야 한다.
다만 한국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팃포탯이 다른 어떤 전략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용서'라는 점이다. 우리를 배신해 응징을 당한 상대가 다시 협력을 선택하면 우리 역시 그와 협력하는 게 팃포탯이다. 이는 상대의 과거 배신을 용서해야 가능하다.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일본의 사과와 보상에 비례해 적절한 수준의 용서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이 보상 노력을 했고 역대 총리가 사과를 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문에도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이라는 사과가 적혀 있다.
용서는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의 적과 협력해 이익을 얻을 기회를 놓친다. 그건 우리에게도 손해다. 팃포탯의 전략이 우월한 까닭은 응징으로 호구가 될 위험을 없애고, 용서로 협력의 기회를 키우기 때문이다. 적절한 수준의 응징과 용서를 한 묶음으로 결합하는 게 승리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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