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반야심경 21-6] 수상행식(受想行識): 세상 모든 고통이 머무름에서 이루어진다
'나'라는 것과 '대상 경계'가 함께 '공'하다면 필경 어딘가에 머물러야 하는가? 모든 경계의 만 가지 인연이 머무르지 못하여 뒤섞여 태허([太虛)의 고요 속에 숨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태허는 주역의 '태극(太極)'과 거의 같은 말로 천지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무형(無形)의 도(道)의 뜻으로 사용된다.
장자는 도를 일체의 것, 전체 공간에 확산되고 명칭도 표현도 초월한 실재(實在)이므로 이를 '태허'라 불렀다. 태허가 기의 본체를 가리킨다는 말은 음양오행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입장에서 '태허즉기(太虛卽氣)'라 한다.
즉, 기(氣)는 무형의 우주공간인 태허에서 생기고, 거기서 충만하는 기의 자기운동에서 모여 만물을 생성하며, 기가 흩어지면 함께 만물은 소멸하나 기는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즉, 기가 흩어진 모습이 태허라는 말이다.
내가 밖으로 나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으며 달리고, 집에 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운데 어디에 머물렀을까? 이 질문에서 나는 쉬었다는 생각을 가지면 벌써 틀린 것이다. 눈이 모든 것을 이끌어 내어 많은 세계가 바빠졌으니 보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만 가지 인연이 잊혀진다.
운동을 했다는 생각을 가지면 머물렀다는 이야기이고, 머무르게 되면 썩는다. 한강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와 끝없이 흘러가듯이 우리 마음도 마음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와 끝없이 무한대로 흐르고 있다. 생각을 굳히면 머물러 집착하게 된다. 집착에서 생사 고통과 시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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