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는 듯합니다. 집착은 이기적 욕망에서 나오며,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여 사랑을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한다. 소유하고 싶어하고, 욕망의 대상을 얻으려 애쓰게 된다. 집착이 속박을 만든다면, 사랑은 자유를 선사한다.
무집착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심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도울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집착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무집착과 사랑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미덕이다.
사랑한다는 환영은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무지와 환영에 대한 통찰을 통해 환영과 개인적 장벽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왜 사는지?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어제보다 더 참된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수행하고 실천해야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참되다'는 말은 우리 양심에 위배되지 않는 행동을 통해 거짓말하지 않는 수행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양심이 가장 훌륭한 안내자이다.
우리는 마음에 신이나 선함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도 신이나 선함을 보기를 원한다. 자신이 찾는 대상에 대한 확신일 없는데 어떻게 그 대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각자의 마음에 있는 신이나 선함이 나타나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신이나 선함에 대해 구체적으로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말로 정의할 수 있어야 그런 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나 선함을 통상 우리의 생각 밖에 존재한다. 자신의 신이나 선함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먼저다.
요즘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언행에서 그들이 생각하거나 정의하고 있는 신과 선함의 모습을 알 수 이해하게 된다. 그만큼의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지만, 스스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항상 개인이 생각하는 신과 선함을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지만, 자신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과연 내가 생각하는 신과 선함을 그려 보자.
우리가 그리는 모든 모습은 일단 사람의 모습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도 무생물에서 식물로, 그 다음에 동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다시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아주 힘 있고 강하며, 잘 생기고 현명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린다.
그런 모습을 신이나 선함의 형태로 형상화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깨닫게 된다. 마음이 맑고 밝지 못한데 어떻게 신이나 선함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대상이 신이나 선함이라고. 그러나 자세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조화와 고요의 상태일 뿐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