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반야심경 30-1]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육근이 없다: 모든 상은 허망하다
우리 모두 다 큰 깨달음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단지 밖으로 꺼내어 쓸 줄을 모를 뿐이다. 누구나 꺼내어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 풍토가 마음 다스리는 수행을 많이 하지 않는다. 공부하라고 한다고 그냥 맹한 정신으로 학교 가는 아이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공부 못하는 것이 철천지한이 되는 듯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
옛말에 무서운 시어머니 아래서 꾸준히 참고 배겨낸 며느리가 나중에 그 가문을 이어갈 수 있는 확실한 며느리가 된다는 말이 바로 그 의미다. 공부하는 데 발 벗고 생명을 걸고 달려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이 덧없음을 모르면 육근이 육적이 된다. 육적은 좋은 것만 헤아리고 이익만 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체가 없는 그 자리가 천당이며 본래 법신 자리이다.
눈에 있다면 본다고 하고, 귀에 있다면 듣는다고 하고, 코에 있으면 냄새 맡는다고 하고, 혀에 있으면 담론한다고 하고, 손에 있으면 잡는다고 하고, 발에 있으면 움직인다고 한다. 온 몸이 움직이면 온 몸이 다 법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육근과 사대, 오온이 보고 듣고 지각하는 것이 아니니 삼가고 조심하며, 사대와 육근을 오해하여 자신이라 여기면 안 된다.
깨달은 사람은 생각을 잊고 진실로 돌아가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습에 집착하여 근본을 잃는다는 말처럼, 육근이나 사대, 혹은 오온은 다 거짓된 이름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방편이나 수단일 뿐, 허망한 것임을 안다고 바로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지는 못한다. 금강경에 말하길 “무릇 있는 모든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다.
자신이 깨달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문자상으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그림 속의 떡이 굶주린 배를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와 같다. 달리다 목마를 때 끝나고 마실 맥주 한 잔 생각하면 갈증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 결국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 저울의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저울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