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스포츠를 거치면서 한 가지 터득한 이치는
모든 스포츠가 기본자세가 중요함(Sports is Form)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함께 어깨에 힘을 빼라는,
말하자면 경직을 피하고 유연함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술적 지침도 대부분의 스포츠가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스포츠에서 몸에 힘이 들어가면
기록의 부진은 말할 것도 없고
몸자체, 즉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요즘 달리기를 해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자주 느낀다.
특히 어깨와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 같다.
당연히 몸이 가볍지 않고 달림으로써 얻는 희열도
반감된 듯하다.
때로는
달리기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망상도
머리속을 침범하여 달리는 의욕을 아예 꺽어 놓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마라톤 이력이 퇴적되어 갈수록
몸이 더 가볍고 주법도 자연스러워야 할텐데
최근의 달리기생활은 그러하지 못하다.
오히려 기능과 기량이 역행과 퇴보를 반복하는 듯하다.
그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았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3년이 좀 넘는 사이 풀코스만 34회를 완주했고 울트라 100킬로도 경험했으며 지난해까지는 연간 6000킬로(월 500킬로)를 달리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자연히 마라톤에 대한 경외심은 사라지고 자만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마라톤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고수인양 덜익어 섣부르고 위험한 지식을 함부로 주절대며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기를 꺽고 오도한 적도 더러 있었다.
마음의 어깨에 힘이 잔득 들어갔으니 그래서야 달리는 것이 즐거울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고
그러고도 몸이 가볍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나무위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기록에 관계없이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여
피니쉬 라인을 통과햇을 때 느끼는 성취감,
알 수 없는 감회, 복받쳐 오르는 공연한 서러움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타고 내리던 뜨거운 두 줄기 눈물,
이런 기억과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일터이다.
그것이 초발심이었으므로 끝까지,
마라톤을 그만둘 때까지 늘 상기하고
지켜나가야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한번, 두번 대회 출전 경력이 쌓여가고
기록이 향상되며 달린 거리가 퇴적되면
첫 완주의 감격과 환희, 그 초발심의 의미는
망각과 기억사이에서 표류하다가 망각의 늪으로
깊숙하게 침몰해 버린다.
대신 마음속에서 자만과 오기같은 것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好勝心으로 가득차 이글거리는
두눈에는 곧잘 핏발이 선다.
아!
돌아가야 하리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처음 출전한 대회를 앞두고
왼갖 준비를 다하고도 전전긍긍하며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다가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소풍 앞둔 아이처럼 들뜨고 설렜던
그 시간을 찾아 돌아가야 하리라.
낯선 곳에 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스타트라인에서 만났던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듯란
고적함과
당길 때까지 당긴 활시위같이 팽팽하던
긴장감을 찾아
돌아가야 하리라.
30Km 너머 사점(死點;Dead Point)부근에서
엄습하는 공포감을 찾아 겸양을 배워야 하리라.
천신만고 끝에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며
흘렸던 서러운 성취의 눈물, 그 의미를
찾아가야 하리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
사람에 대한 공연한 적개심을
묻어버리고
어깨에 힘을 뺴고
두 다리에 힘을 풀어
초발심!
그 순수의 언덕으로
달려가야 하리라.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