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부분의 일상의 삶은 어깨 높이 또는 눈 높이에 맞는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의 안락하고 익숙한 공간적 삶은 쉽게 포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편으로는 유혹적이기도 한다.
어제 퇴근 시간에도 돌풍을 동반한 폭우가 주기적으로 쏟아지다 약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길가의 나무들이 마치 테라스처럼 팔을 쭉 뻗친 채 대피소가 되어 주었지만, 그리 완전하지는 못했고, 문상가는 장례식장을 거쳐 교대역 회의장소까지 완전 젖은 채 터덜터얼 걸었다.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고, 또 미끄러지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이 튀기는 물폭탄을 피하며 발바닥 전체로 땅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옳겼다. 발가락 끝으로 땅을 먼저 디딘 후 뒤꿈치를 디디는 식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움직이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삶은 언제나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삶이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고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러나 가야 한다. 마법과도 같은 현실의 모든 신들이 이 땅을 떠나라고 손짓을 하는 듯한 돌풍 속을 걷는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이니까 나는 나한테 맞는 곳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듯한 환상에 빠진 채 씁쓸하게 내 앞길을 바라보며 나아갈 뿐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만난 이 신비로운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발전시키고 있기보다는 그냥 이 삶 자체에 정체해 있는 것처럼 느끼며 어색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내게 맞는 곳을 빨리 찾으려 마음을 가다듬을 뿐이다.
회의장소에 도착했을 때 홀딱 젖은 사람은 나뿐이었고, 지각한 사람도 나뿐이었다. 폭우 속을 하염없이 비몽사몽인 듯 균형을 잡고 경계석 위를 걸으며 하릴 없이 달려온 듯한 느낌에 잠깐 빠지기도 한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니까 비는 완전히 멎었다. 아까의 분투를 생각하며 돌아오는 산책로는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된 것 같은 완전한 정적 속에 놓여 있다. 초저녁의 돌풍성 폭우가 몰고온 뿌연 안개는 가로등 불빛이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다.
물기에 숨이 막혀 땅 밖으로 나온 지렁이들의 미끌미끌 행진이 나를 즐겁게 한다. 그런 시간은 프라이팬 같은 열기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 멋진 시간이다. 구급차가 경보음을 울리며 지나가기 전까지는 모든 세상이 쥐죽은 듯 고요하게 느껴진다.
옹이가 잔뜩 박힌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겁낼 거 없어. 세상은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거야라고. 세상은 악의가 없다. 살아가는 동안 나는 늘 내가 가는 길을 안내해 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상상했다.
세상이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 믿어 왔다. 무엇보다 나는 즐길 일이 필요했고, 공짜로 할 수 있는 것이 걷거나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 일을 택했고, 처음부터 세상살이는 안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레 상기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