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연기는 만물이 조건에 의존해 생멸한다는 것이고, 공(空)이란 사물에 자성(自性)이 없다는 의미다. 연기가 공이라는 말은 실은 연기하는 것은 공한 것이라는 의미다. 연기와 공이 개념적으로 내포하는 의미는 다르지만 적용되는 대상인 외연은 동일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정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개개의 인간과 인간들의 집합이 모두 이 개념의 외연들, 즉 지시되는 대상들이다. 연기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외연과 공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외연이 같다는 의미다.
사룸이 조건에 의존해서 생겨나고 지속하고 소멸하는 것이 연기이다. 어느 것도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존재하게 될 수도 또 계속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른 것들로부터 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 즉 자재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스스로가 되게 만들어 주는 내적 본성, 즉 자성을 가진다는 것응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연기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해 자성을 가질 수 없어 공하다.
원인과 결과가 각각 자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인과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사물에 자성이 있다고 가정하면 엉뚱한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가 자성을 가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기름을 태워 생긴 불을 그 결과라고 하면, 결과인 불이 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그것은 뜨거움일 것이다. 그런데 이 결과는 원인 안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인 불이 원인인 기름 안에 존재한다면 굳기 성냥을 그어 불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인과라는 것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상인데, 결과가 이미 원인 안에 존재하고 있다면 인과의 존재가 부정되어 버린다. 이것은 수용할 수 없는 결론이다. 그리고 불이 기름 안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 자성인 뜨거움으로 인해 기름도 뜨거워야 한다.
그리고 불이 기름 안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불이 기름을 태워서 생기기는 하지만 아무 관계가 없는 임의의 어떤 것, 예를 들어 물이나 바위로부터는 불이 생기지 않는다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원인과 결과가 자성을 가진다면 이렇게 인과가 불가능하다.
인과 관계로 형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그대로 적용되며, 이 세상에서 인과의 결과물로 존재하는 모든 사룸은 공하다. 그런데 존재하는 사물 가운데 인과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은 참으로 많고 넘친다.
남편이 스스로 자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내가 없으면 남편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남편은 아내에 의존해서, 아내는 남편에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남녀, 형제, 사제 관계 등 서로 상대와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대상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부분과 전체, 수반과 주어진 어떤 대상과 그것을 포함하는 배경 사이의 비인과적 의존 관계를 맺으며 연기하는 모든 것들은 자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공할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자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제법개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기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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