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과 기술이 존재 세계에서 실체를 새로 창조해 낼 수는 없다
최근에 돌아가신 기업체 회장님의 부고란에 수없이 달린 댓글이 화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다른 사건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애도심을 표현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사망했다는 것은 단지 시공 속에 현상으로 존재하던 개인에 대한 다양한 기술이 가능하다는 현상이다.
우리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존재로서의 희로애락의 경험이나 존재 그 자체까지도 스스로 자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상주하지는 않지만, 인연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연기하여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공(空)이란 ‘없다’는 말이지만, 세상 만물이 자성을 가지고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거나 상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멸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 자성 없이 공하여 묘하게 있다는 의미다.
‘있다’는 말은 ‘유(有)’로 자성을 가지고 영원히 있다는 존재를 의미한다. ‘묘하게 있다(妙有)’는 의미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세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동시에 자성 없이 공한 현상, 즉 오직 인연에 의해서만 연기되어 모습이 드러나고 변하는 ‘환(幻)’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를 말한다.
사물이 조건에 의존해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현상으로 묘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단멸하지도 상주하지도 않는다면 현상이나 환은 어떻게 존재할까? 현상이란 어떤 본체의 의미에 대조되는 개념이다.
현상은 실체로서의 진정한 존재자가 아니라 단지 밖으로 드러나는 외모라는, 어찌 보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현상에 대한 철학자 칸트의 견해에 의하면,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세계의 존재양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보는 붉은 색 꽃은 색맹인 개는 그것을 붉게 보지 못한다. 이처럼 종에 따라 꽃이 다르게 보이고 인식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특정한 종이 보는 꽃의 모습이 그것의 참다운 모습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존재세계의 모든 것은 실은 이렇게 우리의 독특한 인식에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들뿐이며, 이런 현상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되는 대상물 자체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환이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런 대상물 자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칸트에게 있어서도 인과의 범주가 적용되는 세계는 전혀 알 수 없는 현상의 신비한 근원으로서의 대상물 자체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이다.
관점과 기술에 따라 생겨나는 다양한 현상 역시 자성을 가진 실체가 아니다. 인연이란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연기법도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다. 여기서도 대상물 자체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기하는 모든 현상의 세계는 공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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