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고 나서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많은 걱정 중에 유독 해본 적이 없는 걱정이 하나 있다. 바로 "어디다 써야 할까'는 것이다. 다들 잘 알겠지만, 돈이란 것이 벌기도 전에 쓸 곳이 먼저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 어떤 때는 돈벌기가 바빠 고민할 틈도 없다.
돈이란 놈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바로 바로 반복해야 건강한 순환구조라고 하지만, 현대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세상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기현상의 세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최고부자 3명의 재산이 전 국민 중 소득하위 50%의 재산보다 많다는 보고가 있다.
포브스가 400대 부자 선정을 시작한 1982년 400번째 부자의 재산은 1억 달러였다. 그것이 2017년에는 20억 달러로 뛰어올랐다. 그 35년 간 미국의 가구당 중간소득은 인플레 감안, 오히려 3% 떨어졌다.
저마다 재산을 만드는데, 한쪽에서는 태산만한 돈더미를 굴리고, 다른 쪽에서는 초가집만한 월급봉투를 굴리는 격이다. 쉬운 말로 월급봉투에서 월급봉투의 삶이라는 말이다. 몇몇 태산만한 돈더미가 돈을 싹쓸이하고 나면 봉투만한 돈은 굴리고 말고 할 것도 없게 된다.
부는 극소수 가진 자들이 독점하고 경제적 불평등의 골은 기하급수적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2017년 1월 세계 최고갑부 단 8명이 보유한 재산(4,260억 달러)이 세계 인구의 절반인 36억명이 가진 재산(4,090억 달러)보다 많았다고 발표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인류사상 최고로 행복해야 할 것이다. 다행이도 돈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세상은 공평하다. 돈이 나와 인연을 맺는 것은 벌 때와 쓸 때, 딱 두 번의 단계를 통해서다.
열심히 벌어서 재산을 늘리며 소유욕을 만끽하며 은행구좌의 숫자만 봐도 행복해진다. 더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달 벌어서 그달 쓰는 서민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어느 정도 부자가 되고 나면 쓰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으며, 기쁨도 잠깐이고 제한적이다.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잭 마 회장이 “100만 달러를 벌면 돈복을 타고 난 것, 기분 좋은 수준이다. 1,000만 달러를 벌면 문제가 생긴다. 골치가 아파진다. 10억 달러 이상을 벌면 그때부터는 사회적 책임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고 써야 할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한편 쌓아만 놓고 도무지 쓰지를 못해도 문제다. 벌기만 하고 쓸 데가 없다.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돈이 상전이 되는 주객이 전도된다. 돈에 매여 점심 한번 여유롭게 먹지 못한다면 은행잔고로는 백만장자일지 모르지만, 일상의 삶은 지지리도 궁색한 가난뱅이들일 뿐이다.
돈버는 것이 능력이라면 쓰는 것은 철학이고 지혜다. 벌기와 쓰기 모두를 잘해야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게이츠와 버핏처럼 우선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품위 있게 쓰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쓰는 멋지고 품위 있는 부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벌어놓은 돈을 쓸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