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 소원이 우등상 한 번 타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유학와서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공부만 한 결과 전교 21등인가 한 번 해본 것이 최상의 성적이었다. 그것도 딱 한 번이었고, 반에서 1등도 못해봤다.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해 얻게 된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즉 어떤 분야에 지속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이 재능이다. 학교 때의 공부와 성적에서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가장 먼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다들 자신의 재능에 따라 대학을 가거나 취업일선으로 나가고, 수 년이 흘러 다시 사회에서 만나게 되면서 학교 때 알지 못했던 친구들의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신기하고 존경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공부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전교 1등을 목표로 달려가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 나는 나쁘지 않을 정도로 시험공부에 노력하고, 내가 스스로 통제 가능한 나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나를 모르는 세상에 나를 던져놓고 내가 얼마나 적응력이 있는지 시험해보는 것이었다. 뭐 그 시절에는 거짓이나 과장이 전혀 없이 말하건 데, 내가 꼭 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사법고시 정도는 걱정도 되지 않았다.
기존의 내가 비뚫어지거나 한 곳으로 치우치거나 휘어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고. 일제 식민시절에 항일운동의 선두에 섰던 민족 자본의 고등학교의 애국 애족 정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고 예리했다. 또 어머님 자랑대로 생긴 모습도 훤하고 말끔하고 당당했다. 시골 촌놈 출신이었지만, 밖에 내어 놓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고 기죽지 않는 번듯함이 있었다. 그만큼 품성이 바르고, 품행이 단정하고, 성격도 좋으면서도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뭐든 끈기 있게 잘 한다.
번듯함의 사전적 의미대로 '형편이나 위세 따위가 버젓하고 당당'하려면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비교와 상대적 우위감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잘 없는 곳에서 새롭게 나의 영역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외과 의사가 한 번 되어보자. 번듯함의 본질은 비교와 상대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그런 외적인 번듯함에만 집착하면 우열과 승패에 과몰입하기 쉬워 여전히 뭔가 모자란다고 생각하게 되고, 괴로워하면서 그 와중에 자칫 자신을 잃게 된다. 스스로 이룩한 성취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다른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번듯함에 집중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이룬 성취가 그 자체가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객관적 비교 가능 지표인 이른바 스펙도 있다.
하지만 비교기준에 따른 상대적 우위, 즉 번듯함에만 몰입하면 나의 개성, 취향, 좋아함과 싫어함, 사랑하는 가족, 친구,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 글쓰기, 삶의 낭만과 향기, 친절과 배려를 지키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정말 진심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원하던 것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런대로 내가 해 온 별 볼일 없는 나의 방황과 성취의 삶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먹고살기 위한 일상의 활동이 소중한 내 가족들의 삶을 그런대로 책임지고 있다면, 진정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경해도 된다. 번듯함이 결국 누군가와의 비교나 성취한 결과의 비교에서 보여주는 것이라면, 나는 번듯하지 않겠다. 우리가 진정 우리의 삶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번듯하기만 한 '야차'는 세상에 차고 넘친다.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사람다운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