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처럼 길에도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많이 알려진 길과 인적도 없고 더 길어서 한결 신비로워 보이는 길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포장되지 않는 그런 길들을 한참 걷거나 달릴 때 떠오르곤 하는 황홀감을 좋아한다.
강둑을 따라 흐르는 한강의 투명한 검푸름은 나에게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하다가도 늘 멀어지고 마는 신비하고 소중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이런 달리기는 나를 시간 속으로 멀리까지 데려가 끊임없이 새로 완성되게 만든다.
길에 나서서 걷거나 달리는 일에 빠져들면 아무리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떤 심각성이 생생히 느껴진다고 해도 슬픔이나 고통, 그리고 힘겨운 생각들은 모드 말끔히 사라지고 기분이 완전히 바뀐다.
더는 실내에 처박혀 우울감에 빠져 있던 내가 아니라 콧구멍에 바깥 바람을 쐬며 앞으로의 전진 유혹에 마음을 연다. 모든 걷기와 달리기는 내 자신이 만나는 사람과 동물, 곤충과 풀과 나무들, 햇살과 바람, 구름과 안개 등 작은 천국이다.
자아를 없애고자 하는 순백의 욕망에 사로잡혀 생동감 넘치는 달리기를 통해 나 자신의 정체성을 구속하는 어떤 것도 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나의 이름, 역사, 그리고 어떤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이 그곳에 있지만, 그냥 사라지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슬그머니 섞여들고 존재의 당사자로서 앞에 나서 이목을 끌지 않으려 한다. 부재함, 텅빈 거리, 일종의 지친 사랑에 대한 글을 쓰고 그런 삶을 찬미하는 것이다.
걷기나 달리기는 나의 수행처이기도 하지만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걷기나 달리기만큼은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날씨와 상관 없이 친구가 있건 없건 혼자서도 산과 들로 나가 말없이 걷거나 달리다 우연히 마주친 음수대에서 맛있는 물을 마신다.
이따금 푹신한 승용차에 탄 듯 편안하게 걷거나 달리며, 유난히 아름다운 풀밭이나 오솔길, 구름 떼를 보고는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먼 길을 주파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즐거울 때는 맥주 한 잔도 더욱 활기를 북돋울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수한 걷기와 달리기들이 세상과 자연과 나를 끈끈하게 연결감을 즐기며, 오늘의 이 시간이 내가 나 자신의 주인임을 확인하며, 일출과 석양의 장엄한 풍경을 감상하며 평화롭게 평범하게 사라지는 법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야생의 어딘가, 내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어떤 은신처, 자연과 나 사이에 다른 어느 누구도 가로막는 이 없는 그런 고즈넉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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