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나 걷기처럼 두 발로 지면을 디디며 이동하는 방식은 고대부터 생존과 삶의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고 이기며 치료하는 약이었다. 먼 거리를 달리는 동안 맛보는 극도의 피로와 자기 상실의 느낌은 주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경험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따뜻한 정다움과 차가운 거칢에 대한 가장 처음 배우는 학습이다. 어두운 밤을 내 신체로 관통해가야 자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아는 우주의 자명함을 되찾게 해주는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아의 변두리에 내던져졌다가 중력중심을 회복하기 위해 걷거나 달린다. 한발 한발 거쳐가는 길은 절망과 권태를 불러일으키는 미로가 되기도 하지만, 흔히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시련을 극복했다는 극히 내면적 느낌 혹은 희열과 재회하는 순간이다.
수많은 발걸음에 점철되어 있는 고통은 세상과의 느린 화해로 가는 과정이다. 달리는 사람은 낭패감 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계속 한몸을 이루고 사물들과 육체적 접축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행복하다.
온몸이 피로에 젖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저곳으로 간다는 보잘것없지만, 명백한 목표를 간직한 채 방향감각을 잃기도 하지만 아직은 알지 못할 어떤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달리기는 인생에서 불행을 기회로 탈바꿈시키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고 있다.
사람을 바꾼다는 영원한 임무를 다하기 위해 길의 연금술이 우리를 길 위에 세워놓는다. 정신적 시련의 통과는 달리기라는 육체적 시련 속에서 우리의 중력중심을 바꾸어 놓은 효과적인 해독제를 발견하게 만든다.
다른 리듬 속에 몸담고 시간, 공간,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주체는 세계 속에 자신의 자리를 회복하고 그 가치를 상대적 시각에서 저울질하게 되고, 스스로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만나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마라톤을 한 번 달려봤으니까 그 힘든 것을 다시는 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라톤 주로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기 때문에 다시 그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은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달리기는 나르시스적 방식이 아니라 사는 맛과 사회적 관계 속에 제자리를 찾게 해준다. 길은 구체적인 달리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암이나 경화증에 걸린 환자들의 병을 이길 수 있는 자신감과 체력 회복을 위한 치료법으로 일부러 이용하기도 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