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너가 있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 그러니 있는 동안 잘 화합하자
십이지연기는 중생이 어떻게 윤회에 들어 나고 죽는지 그 인과 관계를 하나의 사슬 구조로 보여주고 있다. 싯다르타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때, 실로 이 이치를 분명히 통찰한 것이다. 여기서 열둘이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다소 자의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다.
삶의 시기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로 나누고, 그 셋이 다시 인과 관계로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때 무명과 행위는 과거세에, 식에서 유까지는 현재생에, 그리고 생에서 노사까지는 미래세에 배당한다.
무명에 뒤덮힌 중생은 윤회의 근본이 되는 모든 행동을 일으키고, 그 행위의 성향과 결과에 지배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진실을 보고 알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무명이 사라지면 제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무명의 소멸은 사물의 진실된 모습을 보는 지혜에 의하여 실현된다. 앞의 고리가 사라지면 더 이상 뒤의 고리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고의 집적은 곧바로 사라진다. 모든 사물의 본질적 자성(본성)은 그 사물을 연기적으로 형성시킨 조건(인연)들 속에는 없다.
자성이 없으므로 그 외 다른 성품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연에 의해서 자성이 생겨난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만약 자성이 인연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면 만들어진 것이 되는데, 어떻게 본성이 만들어진 것일 수 있겠는가. 자성은 지어진 것도,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하지도 않는 독특성이다.
다른 것에 의지하여 자성이 생긴다는 주장은 우리 자신의 독립자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동물들의 본성처럼 자성이란 어떤 조건에 의해 지어지거나 다른 인연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 독특성이다. 모든 사물은 자기가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여 성립한다.
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닌 부속들이 결합되어 완성되고, 나는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 나나 자성이 없다. 마치 깨끗함이 그 자체로 독립 자존적인 상태가 아니라 깨끗하지 못함에 상대적으로 의존하여 성립되는 상태이며, 깨끗함이란 개념 역시 무자성인 것과 같다.
다양한 법, 즉 제법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을 공성이라고 한다. 또 조건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은 무자성성이다. 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주장을 논박할 때에도 언제나 무자성이라는 전제를 내세움으로써 논리적으로 폭파하는 것이다. 사물의 자성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물을 그 사물이게 하는 자기 동일성, 혹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달리거나 글을 쓰고 있다면, 달리거나 글을 쓴다는 현상은 행위자와 행위와 행위의 대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즉 다양한 인연은 달리거나 글을 쓰는 현상이 성립할 때 비로소 그 모습(현상)을 갖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 구조와 사유 관습은 이 세 가지 현상에 독립된 실체성, 즉 자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지만, 달리거나 글을 쓰는 현상을 떠나서는 달리거나 글을 쓰는 나란 사람과 행동, 그리고 달리기와 글쓰기라는 대상이 자기 동일성, 즉 자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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